도어즈(The Doors)만큼 프론트맨의 그림자가 짙은 밴드도 드물다. 밴드의 상징이자 얼굴마담이 사라지면 나머지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게 보통인데, 세 멤버들은 짐 모리슨(Jim Morrison)이 죽고 해를 넘기기 전에 함께 새 앨범을 냈다. '모리슨이 없으니 이제 내 능력을 보여주리라'는 야심이 발휘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대로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녹음에 기약 없이 늦거나 무대에서 기행을 벌이는 일이 갈수록 잦았던 모리슨에게 느꼈던 짜증과 불만을 털고 홀가분하게 작업해보자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Ray Manzarek)과 기타리스트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 드러머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는 신입 멤버를 받지 않고 새 앨범을 작업했다. 공석이 된 보컬은 만자렉과 크리거가 번갈아 가며 맡았다. 앨범의 몇 곡은 모리슨이 죽기 전에 이미 손발을 맞춰본 곡이라고 한다. 수록된 여덟 곡에서 이들은 모리슨이 없는 상태에서도 지금까지 해왔던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인 디 아이 오브 선(In The Eye of Sun)”을 여는 혼란스러운 전자음과 몽롱한 기타솔로는 이들이 틀림없는 도어즈임을 확인시킨다.
로도 발매된 “타이트로프 라이드(tightrope ride)”가 백미다. 덴스모어의 드럼에 맞추어 만자렉의 오르간과 크리거의 기타가 현란하게 뒤섞이는 곡의 말미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그동안 노래할 일이 없었던 만자렉의 보컬도 꽤 멋지다. 전임자를 잊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노래를 잘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리슨이 전작에 싣기를 거부했던 “다운 온 더 팜(Down on the Farm)”의 멜로디는 재미있지만 너무 밋밋한 크리거의 보컬이 아쉽다. 많은 곡들을 대체로 크리거가 부르고 있는데, 어쩔 수없이 모리슨의 빈자리가 크다. 그가 지녔던 카리스마, 시적인 가사, 걸출한 보컬이 대체되지 못한 인상이다. 대신 모리슨 중심으로 이루어진 도어즈의 역사에서 과하게 주변화된 멤버들의 특징이 중심에 선다. 덴스모어의 찰랑거리는 드럼, 크리거의 끈적한 기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술을 부리는 것 같다”던 만자렉의 키보드 등 남은 멤버들의 매력은 여전하다.
보이시스'는 “모리슨 사후에는 이런 앨범도 있었다”는 식의 짧은 언급에 그치기 때문에 도어즈 팬에게도 존재가 희미하다. 깔끔한 완성품이지만 만든 자도 듣는 자도 모리슨의 빈자리를 너무 크게 의식하는 바람에 음악과 관계없이 절하된 것 같아 아쉽다. 앨범의 제목을 부재를 의식한 'Other Voices'가 아닌 지금·여기 선 이들을 강조한 'The Voices'로 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독창적인 스타일의 연주와 때때로 번뜩이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는 처지는 안타깝다. 물론 도어즈의 전작들만큼 걸작은 아니지만 평작과 수작의 사이쯤에 걸친, 아직 젊음과 재능이 있고 경험이 쌓인 밴드가 잘 다듬어 낸 멋진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장면 없는 중국집”이나 “호랑이 없는 동물원” 같은 느낌이 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1994년 존 패티투치, 밥 버그, 게리 노박과 함께 어쿠스틱 퀄텟으로 내한했던 칙 코리아와 1997년 알 디 메올라, 파코 데 루치아와 함께 기타트리오로 내한했던 존 맥러플린을 10 여년이 지난 어제 오랜만에 이화여대 대강망 무대에서 한꺼번에 다시 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랜드 피아노와 야마하 모티프 신서사이저를 번갈아 연주하던 칙 코리아는 우리 나이로 69세였는데 꽤 날렵해 보였던 10년 전보다는 확실히 몸도 많이 불었고 건강도 꽤 안좋아 보이는 편이었는데 사인회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는 존과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본인은 백업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그의 코드 보이싱 스타일은 여전히 잘 들렸고, 오버톤들도 살아 있는 듯 들렸다.
칙 코리아보다 한살 어린 68세의 존 맥러플린은 여전히 건재해서 번쩍거리는 고딘 기타로 그의 특징이기도 한 고급스런 드라이브 톤에 인도스러운 모드에 기초한 솔로 연주를 시종일관 보여 주었는데, 존 맥러플린을 나만의 멘토로 여기는 나로서는 실은 그의 연주를 처음 보는 셈이라 꽤 재미있었다. (97년 기타 트리오 공연은 그만의 개성이 표출되는 공연은 아니었음.)
그래서 이 재즈-락 퓨전 때문에 '음악'이라는 것에 빠지게 된 나로서는 "너는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 딱 한마디로 답한다. "당연히 존 맥러플린이지" 난 그의 모드에 기초한 솔로를 대단히 좋아하고 어줍긴 하지만 실제로도 방구석에 쳐박혀서는 그런 식의 연주를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이 공연을 정말로 빛낸 뮤지션은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다. 소개 자료에 보니까 재즈 뮤지션들이 가장 총애한다고 나오는데 난 이 구절에 백번 동의한다. 무대에 가방을 들고 와서는 드럼의자에 앉아서 계속해서 뭔가 공부하는 자세로 자신이 두들기는 드럼 사운드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드럼스틱을 날리던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인 플레이다. 와, 드럼이 이렇게 멋있는 악기였나, 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은 웨인 쇼터와 함께 활동한다고 하는데 이 뮤지션의 솔로 음반을 몇 개 구입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지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고민하면서 그 고도의 플레이를 하던 사람이 사인해줄 때는 굉장히 소박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하며 뭐랄까 참 정감이 간다. 사인회를 하는 줄 모르고 현장에서 돈 꿔서 급하게 구한 존 맥러플린의 음반을 들이대니까 "이건 누구의 음반인고...." 라는 듯 이리저리 뒤적이고는 씨익 한번 웃어준다. 나도 한번 웃어준다.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 한번 1960년대와 70년대를 풍미한 유럽의 프로그레시브락과 아트락을 잘 들어보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는 보통의 락 음악같아 히트를 친 음악 중에서도 잘 들어보면 그 연주가 상당히 고도화되어 있고 그 곡의 진행에서 변화가 다양무쌍한 것이 꽤 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닌. 포장은 간단한데 내용물이 꽤 복잡하다는 거다.
보컬이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에 그저 좋다고 마냥 들었는데, 악기들은 정말 분주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반복 패턴이 들리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그런다. 겉으로도 이러한 변화무쌍이 표출되면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는 프로그레시브락의 특징을 한마디로 '외유내강'이라고 표현하는데, Bop 이나 Hard Bop 등이 굳이 표현하자면 '외경내강' 정도라면 어제 공연에서 들은 이런 재즈-락 퓨전은 '외유내강'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옮긴글-
Track list:
01. Light My Fire - [00:00]
02. Riders on the Storm - [07:06]
03. The End - [14:17]
04. Break on Through - [26:00]
05. L.A. Woman - [28:27]
06. People Are Strange - [36:26]
07. Roadhouse Blues - [38:38]
08. When the Music's Over - [42:41]
09. Touch Me - [53:37]
10. The Crystal Ship - [56:49]
11. Love Me Two Times - [59:23]
12. Hello, I Love You - [01:02:39]
13. Peace Frog - [01:04:54]
14. Love Her Madly - [01:07:44]
15. Alabama Song - [01:10:39]
16. Spanish Caravan - [01:13:57]
17. Five to one - [01:16:55]
18. The Soft Parade - [01:21:21]
19. Back Door Man - [01:29:56]
20. Soul Kitchen - [01:33:28]
21. Gloria - [01:37:01]
22. Love Street - [01:44:15]
23. Waiting for the Sun - [01:47:04]
24. Moonlight Drive - [01:51:02]
25. End of the Night - [01: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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